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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건강 에세이



양육의 문제 - 반복 -

작성자
호연클리닉 한기연
작성일
2006-07-31 07:25
조회
3176
부모가 아이의 사소한 행동에 순간적으로 과격한 반응을 보이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옆에서 보기에는 별 일이 아닌 것에, 때로는 지나고 보면 아무 일도 아닌 것에 핏대를 세우고 소리를 지르고 몸부림을 치는 부모를 본 적이 있는가? 혹은 당신이 그러했던 적이 있는가? 사실 인간이 강렬한 정서 경험을 하는 데에 그렇게 많은 자극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작은 위협으로도 어떤 사람들은 심하게 불안해지거나 우울해지며 때로는 위협감을 경험하거나 지나치게 각성될 수 있다. 순식간에 절망 상태에 빠지거나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이 급속히 저하되기도 한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단서를 접하면서 제 정신이 흐트러지고 주의를 집중하기가 더 이상 어려워진다. 이런 상황에서 주의는 외부가 아니라 내적으로 전환되어, 외부 사건보다 오히려 내면의 사고나 정서, 신체적 과정에 더 주의를 주게 된다. 이것을 자기 몰입 경향성이라고 한다. 이 상태에서는 외부에서 현 상태를 해결할 적절한 단서를 찾아서 해결초점적인 대처방식으로 유도하지 못하면서 대신 에너지의 많은 부분을 자신의 높은 정서적 각성 그 자체를 다루는데 사용하는 상태이다. 각성의 단서가 되었던 것들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기 때문에 현재의 정서적 위협에 대한 원인으로 연결시키지 못한다. 연결이 안 되니 위협감이 더 생기면서 위협감을 주는 단서를 찾고자 더 예민해지고, 보통 그냥 지나칠 일도 단서로서 지목한다. 당연히 높은 정서적 각성 상태는 계속해서 유지되면서 자신이 처한 환경은 더욱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어떤 부모들의 경우 아이의 사소한 행동에 이성을 잃고 불 같이 화를 내는 현상이 바로 이것이다. 이들은 위협감으로부터 회복된 후에도 평상심으로 돌아가는데 어려움을 보이는데, 이전의 위협적인 경험으로 인해 갖게 되었던 부정적인 정서에 과도하게 주의를 주면서, 새로운 안도감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자신이 부적절하고 수치스럽고 나쁘기 때문에 좋지 않은 상황이 벌어졌다고 판단함으로써 원인을 내면화한다. 이런 내면화는 이후 사소한 환경적 자극을 다시 큰 위협으로 지각하여 이전의 부정적인 감정을 가져와서 더욱 강렬하게 만들 수 있다. 또한 유사한 상황에서 자신이 받았던 과거의 위협이 부당하고 불공정했다는 기억이 새로운 위협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화가 많았던 환경에서 좌절과 위협을 겪으며 성장했던 부모가 자신의 자식을 다룰 때 유사한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우리는 살면서 자신에게 가장 좋은 감정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익숙한 감정을 찾고자 하는 것 같다. 익숙한 불만족과 슬픔과 스트레스가 여기에 속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오래된 두려움이 필요하다. 마치 그것이 우리 내면에서 비상 경보등처럼 작동하여 우리의 인생을 안전하게 보호해줄거라 여기기 때문이다. 혼란된 부모들은 어린 시절 자신의 부모가 두려움을 방어하기 위해 표출하던 화를 보았던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우리가 익히 잘 아는 것이기 때문에 마치 나의 것처럼 여기게 됬다는 것이다. 그러니, 운이 좋아서 좋은 부모를 뽑았었다면 좋은 부모가 될 기회가 많은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므로. 자신의 내면의 감정이 너무 시끄러우면 외부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마치 방향을 선택할 권리를 몰수당한 채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면서 어딘가를 가고 있는 폭이다. 우리의 과거 감정을 불러오는 아이의 행동에 대해서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 더 강하게 통제하고자 한다. 아이의 행동에 화가 나는 바로 그 때가 자신의 내적 경험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내가 지금 무엇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가를 알아챌 때이다. 자신의 오래된 감정을 해결할수록 현재, 여기서 아이에게 반응하는 데에 유연성과 선택의 폭이 증가한다. 비로서 내 인생이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끝나지 않은 감정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더 나은 부모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될 뿐 아니라, 이 말은 스스로도 발달하지 못한 채 과거에 붙들려 살고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