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2018-12-12T05:51:11+09:00

둘러보고 남기는 말



감사합니다.

작성자
Camilla
작성일
2012-04-14 22:18
조회
537
한기연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서른 살이 된 처자입니다. 오늘 아침, 불안하고 답답한 심정으로 동네 도서관을 찾았다가, 우연히 ‘서른다섯의 사춘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도서관을 나설 땐 마음이 훨씬 편안해졌답니다. 저는 선생님 책의 분류에 따르면 ‘완벽주의형’ 인생을 살아온 것 같습니다. 성공한 부모님 밑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고 자랐지요. 명문학교에 척척 들어가니 부모님은 장녀에게 항상 높은 기대를 가지셨습니다. 하지만 고집이 있어 늘 부모님 기대대로 살지는 않았답니다. 대학 시절엔 전공이 적성에 안 맞는다며 당시 손에 꼽는 ‘인기학과’에서 ‘비인기학과’로 전과를 했지요. 그래도 공부는 열심히 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합격하게 되었지만, 역시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1년을 못 채우고 나왔습니다. 그 후 오랜 방황의 시기를 거쳐, 다행이 제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만족스러운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답니다. 반대를 무릅쓰고 해온 많은 결정들… 그래서 저는 늘 저의 선택이 옳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매일 새벽 악착같이 일어나,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시간을 쪼개어 가며 공부하고... 매순간을 숨가쁘게 살았습니다. 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난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시작한 게 MBA 유학 준비였지요. 저의 성향상 톱클래스 학교 몇 군데가 아니라면 아예 가질 말자는 높은 목표를 세워 스스로를 맹렬하게 drive하고 있을 즈음... 저의 남자친구를 만났습니다. 올해 초 우연한 기회로 만난 저희는 신기할 정도로 죽이 잘 맞습니다. 만난지 오래 되진 않았지만, ‘이 사람과는 평생을 함께 해도 좋겠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남자친구도 그렇게 느끼고 있는지라, 자연스레 결혼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동안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유학이 마음에 걸려 누구와도 제대로 된 관계를 가질 수가 없었는데, 남자친구는 그런 걱정까지도 뒤로 미루게 하는 어떤 힘이 있더라구요. 문제는, 뒤로 미룬 걱정들이 풀리지 않은 채로 계속 남아 저를 괴롭히고 있었다는 겁니다. 주말 내내 유학시험 공부를 해도 모자랄 판에 데이트 약속을 만드는 저 자신을 보며, 내가 도대체 왜 이러는지, 무엇이 옳은 건지 혼란스러웠습니다. 물론 남자친구는 저의 유학계획을 알고 있고, 지지해줍니다. 그렇다고 그가 저와 함께 유학을 가거나, 재정적으로 저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저도 그런 걸 바라지는 않구요. 사실 지금까지 제가 모은 걸 다 쓰고도 모자랄 정도로 많은 돈이 들고, 사생활은 거의 포기한 채로 엄청난 스트레스 하에 공부해야 하는 게 유학입니다. 하지만 기왕 목표를 세웠으니 죽이되든 밥이되든 밀고 나가보자는 생각이었죠. 그러던 찰나에 그가 불쑥 제 삶 안에 찾아든 겁니다. 저는 여태껏 생각지도 못 했던 사랑, 결혼, 가족이라는 것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혹자는 이런 걸 Beautiful Disaster라고 했다지요. 그의 등장은 축복이기도 했지만, 말 그대로 Disaster였습니다. 제가 세워놓았던 '성공으로 가는 완벽한 계획'을 마구 휘저어놨으니까요.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태가 지속되면 남자친구와의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 같았습니다. 결단이 필요하다고 느끼던 차에 선생님의 책을 읽게 되었고, 저의 문제를 보다 명확하게 보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답니다. 먼저 스스로에 대해 이렇게 진단을 내렸습니다. ‘나는 멀티플레이어가 아니다. 일, 유학, 사랑(과 결혼과 그에 수반되는 많은 것들)을 동시에 하기엔 벅차다. 내가 지금 불안한 이유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우선순위는 어떻게 매겨야 할까? 역시 책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니, 이미 마음 속으로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드러낼 용기가 없었던 것을, 책의 도움을 받아 끄집어내었다는 표현이 맞겠네요. ‘서른이 넘은 나이에 우리가 완수해야 할 과업은 바로 자신의 행복을 삶의 가장 중심에 놓는 결단과 의지이다.’ 행복… 왜 저는 그동안 그 단어를 애써 멀리하려고 했는지. 마냥 행복하기만 하면 왠지 잘못된 것 같아 스스로를 들들 볶아왔던 날들. 유학도 나의 행복이 아니라 남들에게 더 인정받기 위함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리고 버겁도록 높게 세운 기준과 목표. 자칫하다간 선생님 책에 등장하는 ‘7년간 미국 명문 로스쿨을 준비한’ 처자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저 매순간 행복하고 싶었습니다. 남자친구와 눈을 마주보고 있는 순간에도 유학 시험 걱정을 하고, '포기하면 패배자'라는 생각에 꾸역꾸역 시험공부를 하며 '내게 정말 유학이 맞는 건가' 끊임없이 의심하는 바보짓은 그만 하자고 결심하였습니다. 살면서 우선순위는 변할 수 있고, 그에 따라 계획도 수정될 수 있으며, 일정 부분 포기하고 타협해도 괜찮다는 것을 인정하자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오히려 이런 과정이 저의 행복을 위해 필수적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지금 저의 우선순위는 ‘나의 평생 동반자가 될 사람을 충분히 알아가고, 사랑하는 일’ 입니다. 물론 유학을 포기하겠다고 결정내린 건 아닙니다. 하지만 대안들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가령 결혼 후에 부담이 덜한 국내MBA를 함께 한다던지 말입니다. 남자친구에게 이 얘길 하면 환영할지, 당황할지 모르겠네요. 속 깊은 사람이니 제가 어떤 결정을 하게 되더라도 이해하고 지지해줄 거라고 믿습니다. 이렇게까지 구구절절 제 이야기를 늘어놓을 계획은 아니었는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책 써주셔서 감사하구요.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수많은 여성들이 선생님의 책을 통해 빛을 찾을 수 있길 바라며...